자동차 이야기
강홍구, 2020년 12월 30일
아우디(Audi) 로고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사람들은 아우디의 역사를 철학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완벽하다고 믿는 상태에서 머무르지 않고 아우디는 한 발 더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끝없는 발전은 자동차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깨고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아우디는 벤츠의 엔지니어인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 박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우디의 창시자인 호르히 박사는 자동차 기술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자동차 기술의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와인을 파는 술집과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독일 최고의 기술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엔진 제조 회사를 거쳐서 28세의 나이에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당시 자동차 경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호르히 박사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벤츠사를 떠나 1899년 11월 14일 독일 쾰른에서 호르히앤씨에(Horch & cie)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아우디의 시초입니다. 그는 1901년에 츠비카우에서 첫 번째 자동차를 생산했습니다. 당시 벨트나 체인으로 움직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엔진을 앞쪽에 부착하였습니다. 엔진 구동력을 샤프트를 사용하여 뒷바퀴에 구동을 전달하는 방식인 세계 최초의 전륜구동 자동차였습니다. 그렇게 1904년에 호르히 박사가 만든 4기통의 레이싱카는 헤르코마 자동차 경주에서 벤츠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호르히 박사가 과도하게 많은 자금을 기술개발에 투입하여 회사 경영에 악영향을 미치자, 경영진들은 그가 모터스포츠에 너무 열중한다는 이유로 쫓아냈습니다.
아우구스트 호르히 박사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이후에도 호르히 박사는 다시 ‘호르히’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했지만, 이마저도 상표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해 상호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호르히 박사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 ‘호르히’의 라틴어 어원인 ‘아우디’를 따서 회사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라틴어 공부를 하고 있던 사업 파트너의 아들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르히 박사는 직렬 4기통 2612cc 28마력의 모델을 시작으로 4기통 3,564cc, 4,680cc, 5,720cc 모델들을 생산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 국제 알파인 레이스에서 처음 참가하여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1920년 자동차 설계 전문가들이 많은 베를린으로 아우디 본사가 이전한 후 호르히 박사는 베를린에서 교통 자문관으로 일하면서 아우디의 이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아우토유니온(Auto Union)지금의 아우디는 1932년 독일 작센 지역 4개의 자동차 업체가 연합하여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경제 불황으로 자동차 업계가 위기에 처하자 자동차 공업의 명성을 유지하고 싶었던 작센(Saxonia) 행정당국의 압력에 의해 기존 4개 회사가 아우토유니온(Auto Union)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대부분의 독일 기업들이 그러했듯, 아우토유니온도 군사용 차량을 생산했습니다. 하지만, 연합군의 폭격 대상이 된 아우토유니온은 전쟁 기간 동안 상당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1945년에 독일을 점령한 소련 군정의 명령하에 전시 배상의 일환으로 대부분의 공장을 해체했고, 동독 소재 아우디 츠비카우 공장도 소련군에 의해 강제로 몰수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우토유니온은 서독 잉골슈타트(Ingolstadt)에 본사를 두고 데카베 브랜드의 자동차 생산을 재개했습니다. 1958년에는 다임러-벤츠(현 메르세데스-벤츠)가 아우토유니온의 87%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1년 후 모든 지분을 인수하여 벤츠의 완전한 자회사가 되었지만, 벤츠사 경영 방침의 전환에 따라 1964년에 상표권과 50% 지분을 폭스바겐그룹으로 다시 넘겨 인수되었습니다. 폭스바겐은 이 회사의 브랜드명을 데카베에서 아우디로 변경했고, 2년 뒤 지분율을 99.55%까지 높여 폭스바겐그룹에 완전히 편입시켰습니다. 아우토유니온은 1969년에 바이크 및 소형 자동차 제조업체인 NSU와 합병을 통해 ‘아우디 NSU 아우토유니온 AG’라는 터무니없이 긴 이름을 사용하다가 1985년에 와서야 브랜드명과 회사명이 같은 ‘아우디 AG(Audi AG)’로 짧게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아우디100(Audi 100)
아우디80(Audi 80)
1968년에는 아우디가 아우토유니온 내의 4개 브랜드 중 독자적인 브랜드로 독립할 수 있었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중대형 고급 승용차 시장을 겨냥해서 제작한 아우디100(Audi 100) 모델 때문입니다. 당시 직접 총괄 지휘하여 아우디100을 제작한 수석 디자이너였던 루드비히 크라우스(Ludwig Kraus)는 아우디100에서 시작된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를 발전시켜 1972년에 아우디80도 제작했습니다. 아우디80은 4기통 OHC 엔진을 탑재했는데, 나중에 폭스바겐그룹에서도 이용하게 되고 이후에는 폭스바겐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엔진으로까지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아우디80은 6년 동안 100만 대 이상을 판매하여 아우디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폭스바겐그룹의 브랜드 구조
람보르기니(Lamborghini)1998년 6월 아우디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전 대통령 아들인 토미 수하르토(Tommy Suharto)로부터 람보르기니(Lamborghini)를 인수했습니다. 토미 수하르토는 1994년 크라이슬러로부터 람보르기니를 인수했지만, 1990년 후반에 경제위기로 타격을 입어 디아블로 후속 모델 개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회사를 매각한 것입니다. 아우디는 2003년 이전에는 벤츠나 비엠더블유(BMW)에 비해 뒤처졌지만, A4와 A6 모델로 성공을 거두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기반의 슈퍼카 R8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새로 공개했던 아우디 TT 모델조차 아우디 R8의 디자인 큐를 본떠 사용했을 정도로 디자인은 아우디가 여태까지 양산했던 어느 자동차보다도 미래 지향적이었습니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아우디 기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Aventador)와 우라칸(Huracán) 모델의 실내 인테리어를 보면 아우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아트(SEAT)세아트(Seat)는 스페인의 유일한 양산형 자동차 생산 및 판매 회사입니다. 피아트는 자동차를 라이선스하여 세아트 브랜드로 수출 및 판매하는 기업이었지만, 1982년에 최초의 독자 개발 모델인 론다(Ronda) 모델 생산을 시작으로 독자 모델을 개발 및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86년에 폭스바겐이 세아트의 지분 75%를 인수하면서 폭스바겐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4년 후에는 폭스바겐이 세아트의 지분 99.99%를 완전한 자회사로 편입시켰습니다. 이후 2002년에 세아트는 새롭게 조직 개편된 폭스바겐그룹 산하의 아우디 앤 람보르기니(Audi And Lamborghini)로 편입되었습니다.
이탈디자인주지아로
조르제토 주지아로
두카티(DUCATI)아우디의 피에히 의장은 “이탈리아 두카티의 미학과 오스트리아 KTM의 경량 차체 철학이 나의 취향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고성능 오토바이 업체인 두카티(DUCATI)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습니다. 아우디가 자회사인 람보르기니를 통하여 두카티를 인수한 배경에는 역시 피에히 의장이 있었습니다. 초기 두카티는 1926년에 설립된 전자제품 회사였습니다. 1946년부터 엔진이 달린 자전거인 쿠촐로(Cucciolo)를 만들기 시작해서 1953년에는 모터사이클 사업부를 두카티 엘레트로니카(Ducati Elettronica)와 두카티 머캐니커(Ducati Meccanica)의 두 개 회사로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1954년에는 두카티의 상징과도 같은 데스모드로믹 캠을 적용하고, 대 배기량 바이크 사업도 벌였습니다. 2012년 5월에 두카티는 폭스바겐그룹의 아우디에게 100% 지분이 인수되면서 모든 경영권과 수익권이 아우디로 귀속되었습니다.
아우디 TT 8N(Audi TT 8N)아우디는 1980년대에 들어서 다양한 신기술과 아우디 4륜구동 콰트로(Quattro) 기술을 기반으로 전 세계 각지의 랠리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을 거듭하여 사람들에게 성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범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이후 1995년에 등장한 모델이 바로 ‘아저씨 차’라는 오명을 벗게 해준 스포츠카 아우디 TT(Audi TT)입니다. 차명인 TT를 보고 있자니, 걸그룹 트와이스(Twice)의 노래 ‘TT’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이 모델은 영국의 맨섬에서 6월에 개최하는 모터사이클 경주인 투어리스트 트로피(Tourist Trophy)에서 유래했습니다. 아우디 TT는 수석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가 디자인했습니다. 자태를 뽐내는 알루미늄을 그대로 노출시켰고, 돔 형태의 곡선을 살려 세단과 스포츠카의 스타일을 합쳐 큰 화젯거리였습니다. 연이어 아우디는 콘셉트카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한 아우디 TT 쿠페(Audi TT Coupé)를 출시했고, 아우디 TT 로드스터(Audi TT Roadster)도 출시했습니다. 이후, 아우디 TT의 영향을 받은 아우디의 모델들은 아우디 TT의 패스트백 디자인을 살려서 현대적인 이미지를 강화하였습니다. 2006년에는 2세대가 등장하였으며, 2008년에는 고성능 버전의 아우디 TTS를 출시했습니다. 아우디 TTS는 2ℓ 엔진을 장착했지만, 1ℓ당 130마력을 넘어서는 265마력의 힘으로 제로백이 불과 5.2초에 불과했습니다. 4년 후인 2014년에 출시한 3세대 아우디 TT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알루미늄과 고장력 강판을 합친 하이브리드 차체 구조를 적용했습니다.
아우디 e-트론(Audi e-tron)2018년에 아우디는 양산차에 가까운 아우디 e-트론(Audi e-tron) 콘셉트를 공개하며, 출시된 양산형의 디자인에 거의 그대로 적용하였습니다. 2020년에 출시한 아우디 e-트론은 차량 전면부의 수직 스트럿을 적용한 8각형 싱글 프레임 프런트 그릴이 특징입니다. 큼지막한 디자인은 순수 전기자동차 특성을 부각했습니다. 파노라믹 선루프, 크롬 윈도우 몰딩, 헤드라이트에서 후미등까지 연결되는 숄더 라인은 스포티한 느낌도 살렸습니다. e-트론의 55 콰트로는 두 개의 강력한 전기 모터와 전자식 콰트로를 적용했습니다. 아우디의 40여 년간 축적된 콰트로(Quattro)에 대한 경험에 기반한 전기 4륜구동 시스템입니다. 장착된 초음파 센서로 물체와의 거리를 측정해 MMI 디스플레이에 표시하는 전후방 주차 보조 시스템도 탑재했습니다. 서라운드 뷰 디스플레이는 쉽고 안전한 주차가 가능하고, 총 4개의 360° 카메라를 설치하여 운전자 주변에 있는 환경을 이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보여주어 정밀한 주차도 지원합니다. 배터리는 150kW급 고속충전으로 약 30분 만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습니다. 아우디의 첫 순수 전기자동차 e-트론은 경쟁 모델인 메르세데스-벤츠의 EQC와 재규어의 아이페이스(I-PACE)의 판매량을 압도하여 아우디 브랜드의 진가를 보여주었습니다. 향후, 아우디는 3년간 새로운 8종의 전기자동차 라인업을 강화하며, 2025년까지 전체 판매 대수 가운데 전기자동차의 비중을 33%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더 뉴 아우디 A8(The new Audi A8)아우디에는 ‘가장 진보한 자율주행기능 탑재’라는 수식어가 붙은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장착한 아우디 A8 대형 플래그십 세단입니다. 2020년 8월에 출시한 더 뉴 아우디 A8(The new Audi A8)은 콰트로 기술을 적용했으며, 스포티한 사이드실과 앞범퍼 알루미늄 디자인으로 세련된 외관에 날렵함을 부각시켰습니다. 자율주행 시 뇌의 역할을 담당하는 아우디의 중앙 운전자 보조제어 장치는 고성능 최첨단 프로세서를 적용하여 모든 센서를 통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계산하는 과정을 거쳐 제어합니다. 사실 아우디 A8은 차체를 모두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제작한 세계 최초의 양산 승용차였으며, 1988년에 출시된 아우디 V8의 후속 차종입니다. 또, 아우디는 기존 제품의 라인업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아우디80은 A4로, 아우디100은 A6으로 변경했습니다. 아우디 A8은 아우디 V8로 불리던 프리미엄 모델이 A8로 명명법을 통일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