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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자동차 창업자 리슈푸

심명숙, 2021년 02월 18일

지리자동차(吉利汽车, Geely Auto)지리자동차(吉利汽车, Geely Auto)
자동차 광인(汽車狂人) 또는 ‘중국의 헨리 포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리슈푸(李書福, lǐ shū fú)는 중국 지리자동차그룹 창업자이며 회장입니다. 리슈푸는 거침없는 공격 경영으로 자동차 업계에 명성이 자자합니다. 그는 맨손으로 연간 생산량 60만대의 중국 최대 민영자동차 기업인 지리자동차를 창업하고 유럽의 볼보(Volvo)까지 인수한 저장 상인입니다. 리슈푸 회장은 2010년 8월 2일부터 볼보자동차의 전 세계 동사장도 맡고 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로 2010년 볼보를 사들인데 이어 영국의 상징인 검은색 택시 제조업체 로터스카를 인수했고 독일 다임러 AG의 지분을 취득하는 등 중국 자동차 업계에서 인수합병(M&A)의 대가로 꼽힙니다. 2020년 4월 6일 기준으로 리슈푸 일가는 1,000억 위안(약 17조원)을 소유함으로써 “후룬 글로벌 100대 기업가 순위” 83위에 올랐습니다. 2020년 5월 12일 리슈푸와 그의 아들 리싱싱(李星星)은 498억 8000만 위안을 소유함으로써 “2020 뉴 재부 부자 500인” 리스트에서 39위를 차지했습니다.
리슈푸(李书福) 지리자동차 회장리슈푸(李书福) 지리자동차 회장
1963년 06월 25일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에서 출생
1984년~1986년 타이저우(臺州) 시취(石曲)냉장고부품공장 공장장
1986년~1989년 타이저우 베이지화(北极花)냉장고 공장장
1989년~1992년 타이저우 지리장식재료 공장 공장장
1992년~1995년 얜산대학(燕山大学)에서 공부
1995년~현재 지리자동차그룹 동사장, 지리홀딩스 회장
2010년 08월 02일~현재 볼보승용차 회장
2015년 12월 16일 제2회 세계인터넷대회 개막식 게스트
2017년 07월 저장성공상련(工商联) 부주석
2017년 11월 27일 12기 전국공상련 부주석 당선.
제11기, 12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
저장성공상련 부주석,
타이저우공상련 부주석
2018년 1월 30일 제13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저장성 대표 당선

120위안(2만원)으로 시작한 첫 창업

소년 시절의 리슈푸(李書福)소년 시절의 리슈푸(李書福)리슈푸의 재산은 이미 중국에서 39번째 부자이지만 처음에는 단돈 120위안(약 2만원)으로 창업하였습니다. 그의 사업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냉장고 공장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크게 실패했지만, 중국의 유대인이라고 하는 이른바 ‘저장상인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안목이 뛰어났고 목표가 정해지면 용감하게 앞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절대로 포기할 줄 모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리슈푸는 1963년 6월 25일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타이저우(台州)에서 태어났습니다. 타이저우는 그가 사업을 일으킨 본고장이자 근거지였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낙후된 산골인 타이저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골 촌놈은 “첫째, 고생이 두렵지 않고, 둘째 가난이 겁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당연히 돈 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라고 늘 말했습니다. 그가 처음 사업을 했던 때는 19살인 1982년의 일이었습니다. 환경의 영향으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리슈푸는 학업을 계속하지 않고 사진관을 열었습니다. 그는 “당시 부친께서는 나에게 120위안을 주셨다”라고 회고합니다. 그 해는 그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던 때였습니다. “처음 사진관을 시작했을 때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몰랐다. 작은 카메라를 하나 구매해서 당시 나는 다 낡아빠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도 리슈푸 회장은 말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그때 리슈푸는 카메라를 등에 메고 공원에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리 오십시오! 동지들 사진을 찍으세요!”라고 소리치면서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지금도 중국의 중소도시의 공원에 가면 여전히 볼 수 있는 흔한 장면입니다.

이렇게 리슈푸의 사진 사업은 수입이 꽤 쏠쏠했습니다. 반년 만에 1,000위안(약 17만원)을 벌자 그는 정식으로 사진관을 열었습니다. 일 년이 지난 뒤 20살에 리슈푸는 처음 기업을 설립하는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을 빌려보면 “내가 선택한 사업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쓰레기’ 속에서 금과 은을 찾는 일이었는데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리슈푸는 언제나 일부 부품을 산 뒤 사진기를 조립했습니다. 천성적으로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것을 좋아했던 리슈푸는 사진을 현상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약품에 담그면 폐기물 가운데 금과 은이 나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리슈푸는 이렇게 분리한 금과 은을 저장성의 소재지인 항저우(杭州)에 가져다가 팔았습니다. 이 일에 재미를 느낀 리슈푸는 아예 사진관 문을 닫고 전문적으로 이 장사에 모든 것을 투입했습니다. 그는 이 사업에 당시로는 거금이었던 1만 위안(170만원)을 아낌없이 투자하였습니다. 당시 사진관은 장사가 잘되었지만 그는 주저 없이 사진관을 닫아버렸습니다. 리슈푸는 “이 사업은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리슈푸는 이 사업으로 돈을 벌었던 것에 대해 지금도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냉장고를 팔아 1000만 위안 부자가 되다

베이지화 냉장고베이지화 냉장고1984년에 이르러 리슈푸는 형제들과 함께 황옌현(黄岩县)에 스취(石曲) 냉장고 부품공장을 설립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리슈푸의 사업적인 수완은 이 해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때 그의 직함은 공장장이었습니다. 갑자기 냉장고 공장의 공장장이 된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이 해를 전후해 리슈푸는 우연히 조그만 구두공장에 가서 구두를 하나 맞출 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눈이 번뜩였습니다. 구두공장에는 모두 4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구두를 만들면서 한편으로 냉장고의 부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말하면 저장성에서 말하는 ‘샤오꺼우 경제(小狗經濟)’였습니다. 이 용어는 최초로 저명한 경제학자 종펑롱(鍾朋榮)이 저장성의 원저우와 타이저우 등의 경제 형태를 관찰한 뒤 사용한 것입니다. 그 의미는 작은 개 세 마리가 큰 개를 이기는 방법은 이들 작은 개들이 큰 개의 코, 몸통과 꼬리를 물어서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중국의 저장성 경제가 발전하게 된 이유가 바로 철저한 분업, 긴밀한 연계 등을 장점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그때부터 ‘샤오꺼우 경제’가 이미 시작됐던 것입니다.

당시 중국의 상황을 보면 북쪽의 일부 도시에는 냉장고의 공급은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리슈푸는 구두를 맞추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골똘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슈푸는 이때부터 직접 개인적으로 부품을 생산한 뒤 포장을 해서 자전거로 냉장고 공장에 배달하였습니다. 이후 리슈푸와 형제들도 함께 냉장고 부품공장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래서 냉장고 공장장이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업이 잘됐어요. 1년 영업액이 4, 5천 위안이나 되었지요.” 이때 리슈푸는 더욱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바로 냉장고를 직접 생산하기로 한 것입니다. 1985년을 전후하여 중국에서는 민영경제가 발달하지 못하였고 국가가 정식으로 허가를 해주지 않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냉장고는 국가가 통일적으로 판매하는 상품이었습니다. 당시 관련 부문으로부터 생산허가 비준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슈푸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1986년 리슈푸는 전기냉장고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증발기를 직접 개발하고 생산한 뒤 황옌현(黃岩縣)에 베이지화(北極花) 전기냉장고 공장을 설립하고 ‘베이지화(北極花)’라는 브랜드의 전기냉장고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냉장고는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1989년 5월, 냉장고의 판매액은 4,000만 위안에 달하였습니다. 아울러 이미 명성이 있던 산동성 칭다오(靑島)의 홍싱공장(紅星廠)과 합작을 하여 홍싱공장의 냉장고와 냉동고를 생산하였습니다. ‘베이지화’ 냉장고는 이미 당시 중국 내 냉장고 업계에서 유명한 제품이었습니다. 26살이 된 1989년 리슈푸는 ‘베이지화’ 냉장고 공장의 공장장이었습니다. 이미 1,000만 위안(17억원)을 번 부자의 반열에도 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큰 변화가 나타났는데, 1989년 6월 중국 정부는 냉장고를 국가 중점생산품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민영사업으로 ‘최고상품’이었던 ‘베이지화’ 냉장고는 국가 중점생산기업에 선정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리슈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새로운 충전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그동안 번 1천만 위안을 들고 개혁개방의 심장 광동의 선전에 갔습니다. 신분은 학생이었습니다. 리슈푸가 처음으로 밖으로 나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전, 상하이, 하얼빈 세 곳에서 대학을 다니며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독학으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 대학을 다니고 공부한 덕분이었습니다.

오토바이 및 자동차 제조에 뛰어들다

리슈푸는 선전에서 공부할 때 어느 날 자신의 숙소를 수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리슈푸는 실내장식 일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눈을 번뜩였습니다. 인테리어 사업의 미래가 괜찮을 것으로 직감했습니다. 앞으로 인테리어 재료 시장의 전망이 밝을 것이라고 내다본 것입니다. 1989년 그는 공부를 마치자마자 즉시 고향 저장성 타이저우로 돌아왔습니다. 곧 형제들과 실내장식 자재 생산회사를 창업하였습니다. 이때부터 1991년까지 2년 동안 저장성 타이저우에 지리(吉利) 장식 자재 공장을 경영했습니다. 이곳에서 중국 최초로 알루미늄 강판을 생산하였고, 아울러 중국 최초로 알루미늄 강판 생산 공장을 설립하였습니다. 이 사업은 리슈푸 가족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준 것은 물론 지금까지도 중국에서는 이 업종은 매년 수억 위안의 이윤을 내고 있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가로서 리슈푸의 생애에 가장 크게 실패를 한 것은 부동산 투자였습니다. 1992년 리슈푸는 냉장고 사업으로 번 돈 수천만 위안을 들고 하이난다오(海南島)를 찾아갔습니다. 이곳에 투자하여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문들이 자자하였고 리슈푸도 이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부동산 투자에 골몰하지만 5~6백만 위안에 달하는 투자금을 모두 날렸습니다. 그는 이때의 이야기를 지금도 극도로 꺼립니다. 그래서 그의 개인적인 소개에도 이 시기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는 크게 실패를 경험한 뒤 얻게 된 가장 큰 교훈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동산 투자 실패 이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리 오토바이 생산라인지리 오토바이 생산라인 지리자동차 첫 차량 하오칭(豪情)지리자동차 첫 차량 하오칭(豪情)
리슈푸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베이징의 옌산대학(燕山大學)에서 공부를 하면서 1993년 ‘베이지화’ 냉장고가 국가지정품목에 들어가지 못했던 실패를 거울삼아 수천만 위안을 투자하여 저장성 린하이(臨海)의 ‘국유우전오토바이공장(国有邮政摩托车厂)’을 인수했습니다. 발로 작동하는 스쿠터식 발동기를 연구하여 생산에 성공하였으며, 이어서 당시 이 업종의 선두주자인 ‘자링(嘉陵)’과 합작으로 ‘자지(嘉吉)’라는 오토바이 브랜드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판매량이 중국 스쿠터 시장의 순위를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과 이탈리아 등 32개 국가에 수출까지 할 정도로 사업이 성공하였습니다.

1994년 오토바이 장사가 잘되자 리슈푸는 다시 한번 과감한 결정으로 사람들이 놀라게 했습니다. 바로 ‘자동차 생산’이었습니다. 이 일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중국 정부는 생산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산업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간산업으로서, 누구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리슈푸는 먼저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장성의 린하이시에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토지 850무를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오토바이 생산을 이유로 지리(吉利)의 ‘하오칭자동차공업단지(豪情汽車工業園區)’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1997년 때마침 스촨(四川)의 소형차량 생산 기업이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리슈푸는 1,400만 위안을 투자하고 ‘스촨지리보잉자동차제조회사(四川吉利波音汽車制造公司)’를 설립하였습니다. 이렇게 소형차와 이른바 ‘봉고차(面飽車)’의 생산권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8월 8일 리슈푸는 정부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지리하오칭(吉利豪情)’ 자동차생산을 위한 두 개의 라인을 먼저 설치하였습니다. 2000년 12월 국가경제무역위원회가 제7차 차량생산기업 생산품에 대한 공고를 발표하면서 리슈푸의 지리그룹의 숙원사업이던 승용차 생산 자격을 마침내 얻게 되었습니다. 2001년 지리는 린하이(臨海)에는 하오칭(豪情), 닝보(寧波)에는 메이르(美日), 그리고 상하이 푸동에는 화푸(華普), 이렇게 세 곳의 자동차 생산기지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리는 자동차 공업의 기본적인 전략 구조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지리그룹은 2010년까지 이미 위엔징(遠景), 진깡(金剛), 진잉(金鷹), 쯔요우지엔(自由艦), 요오리오(優利歐), 메이런바아오(美人豹), 슝마오(熊猫), 띠하오(帝豪) 등 시리즈의 자동차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리자동차가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2010년 2월 자동차 총생산량은 28,712대로 2009년 동기 대비 54.2% 성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 2월 지리자동차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3총사는 쯔요우지엔(自由艦), 지리진깡, 위엔징으로 각각 9,460대, 5,156대와 3,884대가 팔렸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볼보와 다임러의 지분을 인수하다

볼보(Volvo) 로고볼보(Volvo) 로고 2014년 시진핑 주석 벨기에 방문 시, 리슈푸 회장과 함께 볼보그룹 현지 공장 순찰2014년 시진핑 주석 벨기에 방문 시,
리슈푸 회장과 함께 볼보그룹 현지 공장 순찰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메르세데스-벤츠
(Mercedes-Benz)
리슈푸가 성장한 과정을 보면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을 섞어놓은 듯합니다. 리슈푸는 시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만 졸업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무모해 보일 만큼 과감한 도전으로 큰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다른 중국 국영 자동차 회사들과 달리 그는 일찌감치 세계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는 거리의 사진사로 돈을 벌기 시작해 냉장고 부품과 완제품 공장, 인테리어 자재 사업을 거쳐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사업 영역을 넓혔습니다. 여러 사업을 전전했지만 궁극적인 꿈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리슈푸 회장은 사전 작업으로 1994년 오토바이 공장을 인수했고 2년 뒤 망해가는 국영 버스회사를 사들였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국영기업만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지만 승용차 생산은 여전히 불법이었죠. 그는 포기하지 않고 중국 정부를 설득해 2001년 허가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저가 전략으로 외형을 키우다가 2000년대 중반 외국에서 자동화 설비를 들여오고 연구개발에 나서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끝에 2010년 스웨덴의 볼보(Volvo) 승용차를 인수한 게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볼보에 대한 애착을 그는 “볼보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성과 같다. 멀리서 보고 놀랄 뿐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볼보를 품은 이후 영국 택시 ‘블랙캡’ 생산업체인 망가니즈 브론즈와 스포츠카 로터스, 볼보상용차를 인수했고, 2018년 2월엔 독일 다임러 지분 9.69%를 확보하며 최대주주에 올랐습니다.

지리자동차의 다임러(Daimler)의 지분인수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다임러는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독일 기업입니다. 리슈푸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발한 금융기법으로 다임러 지분을 9.7%나 인수한 것입니다. 우선 2017년 리슈푸가 다임러에게 지분인수와 기술 공유 협정 체결을 타진했지만, 다임러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리슈푸는 즉시 홍콩 페이퍼 컴퍼니와 파생상품, 은행 파이낸싱 및 주식옵션 같은 방법을 총동원해서 암암리에 다임러 지분을 매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투자진행과 자금조달은 모건스탠리와 BOA메릴린치를 활용했습니다. 또한 지리자동차는 모건스탠리 출신 인사를 고용해서 독일의 주식 대량보유 공시제도를 피하는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독일은 주식을 3% 이상 보유하게 될 때와 5% 이상 보유하게 될 때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리슈푸의 다임러 지분 인수작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누구도 리슈푸가 지분을 9.7% 매입할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독일에서 주식 대량보유 공시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평가

리슈푸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는 민족기업가로 평판이 나 있습니다. 그는 민족공업 발전에 성심을 다하였다고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여 양성하였고, 독특한 경영관리 방법의 개혁과 전략을 추구하였으며 생산품의 개발과 품질의 제고를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경영 규모의 확대와 자본 경영 운영 분야에서는 남다른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리슈푸는 경영에서 민주적인 입장을 견지하지만 일을 추진할 때는 매우 과단성이 있습니다. 그의 경영 특징은 정책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매우 심사숙고합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깊이 있게 고려하고, 특히 다른 사람의 장점을 널리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전문가와 학자들, 경영 관리자들과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입니다. 무엇보다도 꼼꼼하고 치밀한 시장조사와 가능성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일단 정책 결정을 할 때는 확고하며 집행은 단호하고 신속합니다. 그는 중국 저장 상인들의 특징인,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리슈푸의 장점은 기업의 효율과 사회적인 효율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점입니다. 리슈푸가 최근 몇 년 동안 연구소, 교육센터와 사회 자선사업에 기부한 자금만도 수억 위안이 넘습니다. 그가 유명기업가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흥미롭기도 합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스스로 대학입학시험을 포기했지만 외국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독학으로 배운 영어로 통역없이 대화가 가능합니다. 더욱이 그는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어느 날 저녁 이미 밤 11시가 되었는데 리슈푸는 잘 아는 기자 만룬롱(萬潤龍)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갑자기 시구가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그의 시는 “울퉁불퉁한 길 위에 나의 꿈을 싣고, 견실하게 먼 곳으로 뻗어가자(坎坷的道路承裁着理想, 堅實地伸向遠方)”였습니다. 그는 이 시에서 시어로서 ‘견실’이 좋은지 ‘견정(堅定)’이 좋은지를 물었습니다. 토론을 거친 뒤 그는 ‘견실’을 썼습니다. 이 시는 리슈푸가 쓴 유명한 ‘역량(力量)’이라는 시입니다. 문학적인 재능을 가진 리슈푸는 자신이 설립한 베이징의 지리대학의 교가도 직접 작사했습니다. 리슈푸는 다재다능했습니다. 리슈푸는 생각은 현실적이지만 단견이거나 천박하지 않았고, 적극적이며 부지런히 노력하며 사심이 없고, 허영을 부리지 않았으며 속되지 않으며 경험형의 사유가 발달했고 직관예측 능력이 강합니다. 사고의 경지가 비교적 높고, 민영경제를 추진하면서 민족공업이라는 넓은 시야를 발전시킨 인물입니다.

맺음말

리슈푸 회장의 거침없는 질주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볼보와 벤츠를 삼킨 중국의 ‘자동차 대부’ 리슈푸 지리자동차 회장은 최근 다시 한번 그의 원대한 야망을 드러냈습니다. 10년 전 사들인 스웨덴의 볼보와 중국 지리자동차의 합병을 추진하기로 한 것입니다. 2020년 12월 초에 볼보자동차와 지리자동차의 합병계획이나 컨소시엄 협상이 2021년 1분기에 재개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합병을 마친 두 회사는 홍콩 증시와 스톡홀름 증시에 2차 상장까지 추진할 계획입니다. 중국 자동차업계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움직이는 다국적 자동차 업체가 탄생하는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지리자동차와 볼보의 합병 추진은 리슈푸의 오랜 꿈을 이룰 첫걸음이자, 업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리슈푸 회장은 2020년 12월 31일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지리자동차가 스타마켓에 상장하면 볼보자동차와의 통합 개편 논의를 재개해 더욱 긴밀한 협력 방식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리자동차와 볼보가 합병 작업을 완료하면 기업가치는 크게 올라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 지리자동차는 시가총액이 160억 달러(약 18조원)입니다. 볼보는 160억~320억 달러를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다 2018년 금융위기 등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이를 보류했었습니다. 미국의 블룸버그(Bloomberg)는 볼보의 기업가치를 120억~180억 달러라고 가정한 뒤 두 회사의 합병 후 기업가치는 3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예상했습니다. 영국 유명 조사기관이 발표에 따르면 “2020 글로벌 브랜드 조합 가치 TOP10 순위”에서 지리자동차는 180억 달러로 9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중저가 자동차를 생산하던 지리자동차는 볼보와 다임러라는 유럽 명차와 제휴하여, 명실공히 중국 3대 자동차 제조업체로 성장했으며, 앞으로 글로벌 최상위 자동차 기업으로의 도약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인생은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나는 고물 기계에서 금과 은을 얻는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서 배웠다. 내 꿈은 지리자동차가 전 세계를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리슈푸 회장의 꿈이 머지않아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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