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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영기업 베이징자동차

천영철, 2020년 12월 30일

베이징자동차그룹(北汽集团, BAIC Group)베이징자동차그룹(北汽集团, BAIC Group)
중국의 자동차나 제조업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베이징자동차라는 단어가 가끔씩 화제로 떠오릅니다. 얼핏 생각하면 베이징자동차는 자동차를 제조하는 하나의 업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틀리지는 않았는데 사실 베이징자동차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져 있는 집합적인 단어로서, 베이징자동차그룹과 베이징자동차주식유한회사, 그리고 베이징자동차(北京汽车, BEIJING)라는 제품 브랜드가 포함된 말입니다. 본문에서는 베이징자동차의 전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베이징자동차그룹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베이징자동차그룹

베이징자동차그룹 사무빌딩 전경베이징자동차그룹 사무빌딩 전경베이징자동차그룹(北汽集团, BAIC Group)은 중국의 5대 자동차그룹 중 하나로서, 2010년 11월부터 베이징자동차그룹유한회사(北京汽车集团有限公司, Beijing Automotive Group Co. Ltd.)라는 상호로 사업을 추진하는 중국의 대기업입니다. 이들은 중국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완성차와 핵심부품의 개발과 제조 및 판매, 애프터마켓과 애프터서비스, 종합교통서비스, 금융과 투자, 일반항공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자동차그룹은 미국의 포춘 매거진이 평가한 2020년 세계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134순위에 올라있는 글로벌 대기업입니다.

베이징자동차그룹은 1958년 자체로 승용차를 개발한 뒤, 중국 1세대의 군용 지프차 BJ212와 1세대의 경형트럭 BJ130을 개발하여 중국에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베이징자동차는 중국 처음으로 완성차 중외합자기업 베이징지프를 설립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자동차, 벤츠자동차와 합자기업을 설립하여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베이징자동차는 중국의 자동차 업계에서 항상 선도적으로 대외개방, 기업체제 개혁, 외국투자유치, 기술도입 및 사회자본 운용 등을 추진하여 왔으며 중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베이징자동차그룹 산하에는 13개 완전자회사, 8개 지주회사, 25개 공동투자회사가 있습니다. 이 중에는 베이징자동차(北京汽车股份, Baic Motor), 베이징현대, 베이징벤츠, 베이치푸텐(北汽福田, Beiqi Foton Motor), 푸젠벤츠(福建奔驰, Fujian Benz), BAIC 블루파크마그나(麦格纳卫蓝, BAIC Bluepark Magna), 베이징일반항공(北京通用航空)과 같은 유명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중국의 10여개 지역에 승용차, 상용차, 그린에너지 자동차, 합자브랜드 승용차 제조거점을 가지고 있으며, 5개국 7개 지역에 연구개발센터를 운영하고 30개 이상의 나라와 지역에서 완성차 조립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판매대상 지역은 글로벌 80개 나라와 지역에 걸쳐 있습니다.

최근 산업의 주요 발전 추세인 전기자동차, 스마트자동차, 커넥티드 자동차, 공유자동차 등의 변화에 대해 베이징자동차그룹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선두에서 그린에너지 산업의 전략 레이아웃을 추진하며 모빌리티,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의 연구와 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그룹의 경쟁력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자동차의 역사

1949년 2월 중국공산당이 집권하면서 그 당시 베이핑시(北平市) 군사관리위원회는 이전의 국민당정부에서 운영하던 409자동차수리공장과 스자좡(石家庄)시에서 베이징으로 이전한 자동차수리공장을 통합하여 중국인민해방군 화북군구 군수품관리부 산하 베이핑자동차정비수리공장(北平汽车修配厂)을 설립하였습니다. 1951년에 중국인민해방군 군수품관리본부 소속으로 넘어가면서 군수품관리본부 제6자동차정비수리공장으로 되었다가 후에 제5자동차정비수리공장으로 되었습니다. 이 시절에 자동차정비수리공장은 주로 군에서 사용하는 미제 차량, 특히는 월리스MB의 정비와 수리를 담당하였으며, 이후에는 고무제품과 판금제품 등 부품제작도 추진하였습니다. 임직원수는 1,000명 이상이었고 401대의 설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정부에서 제1차 5년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는 1953년에 창춘에서 구소련의 지원으로 추진되는 중국제일자동차공장이 설립되었습니다. 대규모의 자동차공장을 구축하는 것은 공산당 집권 후 처음이라서 전국 각 지역에서 힘을 합쳐 지원하였습니다. 베이징시 정부도 1953년에 창춘제일자동차공장과 루어양(낙양)제일트랙터공장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이들에게 부품을 공급해주는 베이징자동차부품공장을 구축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단계에 제5자동차정비수리공장은 화베이농업기계본공장1공장과 병합되어 베이징자동차부품공장으로 되었습니다. 베이징자동차부품공장은 1953년 7월에 제일기계공업부의 설립허가를 받고 1954년 8월 20일에 베이징자동차부품공장을 기반으로 베이징제일자동차부품공장이라는 공장명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베이징제일자동차부품공장은 설립 후 1955년에 1,075만 위안을 투자하여 베이징 차오양구에 대지면적 51.2만m2, 건축면적 5.9만m2의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1956년에 준공하였습니다. 베이징제일자동차부품공장은 제일자동차공장과 루어양제일트랙터공장에 협력하는 산업기지로서 카뷰레터(carburetor), 오일펌프, 필터, 와이퍼, 압력계, 실린더 헤드 가스켓, 오일실(oil seal), 베어링 부시(bearing bush), 프론트 헤드라이트를 비롯한 17종의 부품을 생산하였습니다.

징강산 브랜드 승용차 출하식징강산 브랜드 승용차 출하식1958년에 중국에서 제2차 5년계획이 시작되었으며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던 중국공산당 제8기 전국대표대회 제2차 회의에서 주석인 마오쩌둥(毛澤東)이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 신속하게 절약하면서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 건설방침을 발표하였고 자동차 산업을 대상으로 “우리가 직면한 기술혁명 중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는 전국 범위에서 현대화한 교통수단을 위한 도로망을 구축하는 것이다.”라고 전략적인 과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 당시 중국의 자동차 산업이라고는 창춘제일자동차공장뿐이었으며 이의 생산능력으로는 도저히 중국 자동차 시장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려웠으며, 제일자동차공장을 구축한 뒤에 중앙정부도 재력의 부족으로 신규 자동차공장의 건설에 투자를 추진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각 지역에서 스스로 자동차산업을 구축하게 되었으며 자동차산업 주관부서는 “보수적인 생각을 버리고 자동차산업의 도약을 실현하여 4년 안에 트럭 생산에서 영국을 초과하고 12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자”는 목표를 내걸고 중국 전역에 14개 자동차공장을 구축하여 연간 52만대의 규모를 실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자동차사업을 구축하는 붐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대약진 운동의 붐을 타고 1958년 2월에 베이징제일자동차부품공장도 승용차를 시제작하는데 나섰습니다. 그 당시 베이징제일자동차부품공장 자체는 승용차를 제작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으며, 고작 있다면 자동차의 일부 부품을 생산했던 경험과 몇 해 전에 오토사이클을 제작했던 경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혁신을 추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공산당위원회 서기 펑커(冯克)와 공장장 리루이(李锐)의 선동하에 공장 기술진과 작업자들은 열정을 가지고 시제품을 시작하였으며 칭화대학 자동차공학부 교수들과 학생 100명의 지원을 받으면서 4개월 안에 승용차 시작품을 개발하였습니다. 독일 폭스바겐의 비틀(Volkswagen Beetle)을 참조모델로 4기통 36마력 1192cc 공기냉각 엔진을 탑재한 개발품은 최대속력을 100km까지 낼 수가 있었습니다. 공장 지도자들은 개발품의 브랜드를 징강산(井冈山)으로 명명하였습니다.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 설립 행사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 설립 행사1958년 6월 20일에 베이징제일자동차부품공장에서 승용차 개발 성공 경축 이벤트를 가졌습니다. 이벤트에서 제일기계공업부자동차사무국 국장인 장펑시(张逢时)는 공장 명칭을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으로 변경한다고 소식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벤트를 마치고 공장 지도자들과 개발팀원들은 중난하이(中南海)에 다녀가서 국가 지도자들에게 희소식을 보고하였고 주더(朱德) 위원장도 기쁜 김에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이라는 공장명을 붓글씨로 써 주었습니다.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은 1958년 7월 27일에 리브랜딩하여 런칭되었으며 9월말까지 50대를 만들어 그 해 건국절 행진 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징강산 브랜드 승용차는 기술적으로 부족점이 많아 양산을 하지는 못하였고 총 154대의 시제작으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은 자동차 제조에 관련하여 많은 경험을 쌓았고 이는 그 후 자동차 산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팡홍(东方红) 승용차 개발

1959년 11월에 제일기계공업부는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에 참조모델로 구소련의 고르키자동차공장(Gorkovsky Avtomobilny Zavod)에서 생산한 볼가(volga) GAZ-M21N 1959년 버전을 내주고 중급승용차 제작 지시를 내렸습니다. 제작기획을 수립하면서 승용차 차종을 싱훠(星火) 760으로 하였다가 후에 동팡홍(东方紅)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구소련 전문가들의 기술지원구소련 전문가들의 기술지원 구소련 전문가들의 기술지원구소련 전문가들의 기술지원 동팡홍(东方紅) 승용차동팡홍(东方紅) 승용차
제작 지시를 받고 시제작에 진입은 하였지만 승용차를 양산 개념으로 개발해본 경험이 없는 개발진은 어렵게 방도를 모색하였으며 그러다가 1960년 초에 하이난(海南)으로 볼가(volga) 승용차 필드 테스트를 나가는 구소련의 5인 전문가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공장지도자들은 중국자동차산업의 발전에 관련된 문제들을 대상으로 이들과 대화하면서 승용차의 양산 제작 관련하여 많은 조언을 받았습니다. 더 고마운 것은 이들이 떠날 때 볼가승용차 설계도면 한 부를 남겼습니다. 덕분에 베이징자동차는 그 해 4월까지 동팡홍 브랜드 승용차 BJ760을 3대 샘플로 제작 완료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개조 계획을 수립하고 1961년 말에 양산준비를 완료하였습니다.

1961년 11월에 동팡홍 승용차를 가지고 25,000km 주행 테스트를 추진하였는데 추진결과 최고 속도 125km/h, 최소연비 9.8 l/100km의 성능이 나왔습니다. 구소련의 모스크비치(Moskvich), 포베다(Pobeda) GAZ-M20와 대비할 때 성능이 좋고 섀시의 신뢰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65년 5월에 중국 자동차공업공사에서 동팡홍 승용차와 상하이 펑황브랜드 승용차(上海凤凰牌轿车)의 성능 평가 차원에서 벤츠 220SE, 포드 F500, 피아트 2300, 올즈모빌(Oldsmobile) 등 외국제 승용차들을 모아 50일 정도의 비교 테스트를 추진하였습니다. 결론은 동팡홍 승용차의 주요 성능과 신뢰성이 도로 사용에 충분하다는 평가였습니다.

동팡홍 승용차의 개발에 성공한 뒤 베이징자동차공장은 공장 확장 건설을 신청하였으며 1966년 말에 중국 국무원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연 5,000대 생산능력을 갖추고 이 중에서 BJ212 지프 4,400대, 동팡홍 승용차 600대를 생산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66년 말에 베이징시 공산당위원회 서기인 셰푸즈(谢富治)가 “부르주아 생활 방식을 도입하지 말자”고 동팡홍 승용차의 생산을 중지시켰기 때문에 결국 양산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동팡홍 승용차는 베이징자동차산업에서 처음으로 외국 기술을 도입하여 자체적인 개발에 성공한 제품이었습니다. 징강산 브랜드 승용차 시제작 단계에 축적했던 경험과 구소련 전문가들의 지도는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으로 하여금 자동차 개발을 추진함에 있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개발절차를 알게 하였으며 무식한 업무추진방식에서 과학적인 방식으로 자동차 개발을 추진하는 기본방법을 알게 하였습니다.

군용 지프차 BJ212 개발

BJ212 지프차BJ212 지프차 1969년 건국절 검열에 참가한 BJ212 지프차 1969년 건국절 검열에 참가한 BJ212 지프차 BJ210C 지프차BJ210C 지프차
1950년대 말까지 중국인민해방군 군용 전술 지휘차는 구소련의 GAZ-69 4륜구동 경형트럭을 수입하여 사용하였습니다. 1960년에 중국과 구소련 사이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중국인민해방군의 군용 전술 지휘차는 공급원이 없어지게 되었으며 부득불 자체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에서는 베이징자동차로 개발 지시를 내려보냈으며 베이징자동차는 1961년 6월에 BJ210 지프차 견본을 제작하여 중국인민해방군 참모본부에 심사를 의뢰하였습니다. 후에 참모본부의 의견에 따라 두 번 설계방안 수정작업을 거친 뒤 BJ210C 설계방안으로 확정을 지었고 BJ210C는 1963년에 국가 검증을 거쳐 합격이 되었습니다.

BJ210C 지프차의 개발을 완료하여 300대를 군에 공급하여 시험 사용을 추진한 결과 군대측에서는 월리스 MB 타입의 2도어 지프차는 전투 가운데 공중습격을 당할 경우 상하차가 불편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며 GAZ-69 성능을 유지하는 4-도어 지프차를 요구하였습니다. 군에서 온 의견을 접수하고 베이징자동차는 1년 정도의 노력을 거쳐 BJ211과 BJ212의 설계도면을 제출하였으며 반복적인 시험과 시정을 거친 뒤 참모본부는 BJ212로 양산을 요청하였습니다. 그 때 BJ212의 개발은 군수품으로 시험하고 생산을 하면서 비밀리에 진행되다 보니 외부적으로 공개된 소식이 없었습니다. 1966년 8월에 중국의 지도자인 마오쩌둥이 이 차를 타고 텐안먼광장에서 홍위병들을 만나게 되면서 신문보도에 공개되었으며 마오쩌둥이 타던 차라고 바로 전국에 소문이 나서 군대 장교들과 지역 간부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BJ212는 연대장급 이상의 장교들이나 군수(郡守) 수준의 간부들에게 배정되었으며 생산능력의 부족으로 출하되는 제품은 우선적으로 군대에 공급이 되고 지역 간부들한테는 장기간 제대로 공급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BJ212 지프차를 승용차 대신 사용하였으며 가격이 저렴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특징으로 특히 도로 조건이 안 좋은 지역에서 호평을 많이 받았습니다. 1988년 1월 30일에 베이징자동차공업유니온은 BJ212 지프차 50만대 출하 이벤트를 가졌습니다. 지금까지도 BJ212 지프차는 CUV 애호가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습니다.

BJ130 경형화물차 개발

BJ130 경형트럭 생산현장BJ130 경형트럭 생산현장공산당이 집권한 뒤 베이징 시내 운송은 옛날과 별반 다름이 없이 마차와 우차로 진행되었으며 이로 인해 운송효율, 위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거론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그 당시 베이징시 부시장인 완리(万里)가 1965년에 해결조치로 경형트럭의 개발을 제안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산하기관인 베이징시 교통운송 사무국은 베이징시자동차수리회사 제2수리공장에 경형트럭의 개발명령을 내렸습니다. 제2수리공장은 원 베이징시자동차수리공장 2공장이었으며 1950년대부터 자동차 부품의 제조와 수리를 추진해오던 업체였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중국과 서방세계와의 관계가 끊기면서 수입차 비품 수입이 중단되어 차 고장이 발생하면 부품 부족으로 인해 수리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때 제2수리공장은 자체적으로 실린더 라이너(cylinder liner), 피스톤링(piston ring), 피스톤, 베어링 부시(bearing bush) 등과 같은 부품을 개발하여 수입 비품을 대체하였습니다. 1960년대에 진입하면서 900여명의 직원을 모유하고 년 400대 정도의 자동차 수리를 할 수 있는 업체로 성장했습니다. 1965년 7월에 베이징시자동차수리회사 제2수리공장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경형트럭의 개발을 추진하고자 베이징시 교통운수 사무국은 1965년 11월에 개발 프로젝트팀을 구축하고 제2수리공장에서 경형트럭 개발에 진입하였으며 18개 연구파트를 구축하여 시리즈 개발과제의 해결에 나섰습니다. 워낙 자동차 개발 경험이 없는지라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에서 기술인원들을 초청하여 기본교육을 받으면서 BJ212 지프차 개발과정을 참조로 4개월간 개발을 추진하였습니다. 1966년 4월에 시제작이 완료되어 BJ130 경형화물차 2대를 제출하였습니다.

시험 제작이 완료된 뒤 제일기계공업부 자동차 사무국은 전국 10여개 성과 시에서 경형트럭의 시험사용을 추진하였으며 이 과정에 국내 자동차 수요량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1966년 기준으로 중국 전역에 경형트럭의 보유량은 불과 17,000대 수준이었으며 민간화물차 수량의 7%정도를 차지하였습니다. 공급과 수요간의 격차는 엄청 컸으며 BJ130 경형트럭의 시장전망은 두말할 필요 없이 아주 좋았습니다.
BJ130 경형트럭BJ130 경형트럭BJ130 경형트럭의 개발완료에 따라 각 지역에서 주문이 날아왔으며 기업에서는 국가에서 내려오는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 비추어 자체적으로 양산준비에 나섰습니다. 전용설비와 작업공구, 작업JIG의 개발을 추진하여 선후로 플라스틱 차체 판넬 금형, 액압프레스(hydraulic press), 압연기(rod rolling mill)를 제작하고 1,000개 이상의 작업 JIG를 개발하였으며 조향기어(steering gear), 프런트/리어 액슬 생산라인을 구축하였습니다.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부품을 외부에서 구입하였으며 이 과정에 중국 내 60여개 업체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했습니다. 시제작의 난이도를 낮추고 투자를 줄였으며 추후 전문화 생산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외부 구입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인 엔진은 베이징내연기관본공장에 생산한 BJ492 가솔린 엔진으로 하였습니다.

1968년에 소규모 생산을 추진하고 1973년에 양산을 시작하였으며 1975년 5월에 제일기계공업부에서 조직한 BJ130 경형트럭 경험교류회에서 개발성과에 관한 인정평가를 받았습니다. 제일기계공업부는 2톤 경형트럭의 제조와 관련하여 전국 경형트럭 제조회사들에 BJ130 설계도면에 따라 생산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이로 인해 전국 20여개 업체가 BJ130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 BJ130 경형트럭은 전국적으로 생산량이 가장 많은 경형트럭이었습니다.

1972년에 베이징시자동차수리회사 제2수리공장은 베이징시얼리거우자동차제조공장(北京市二里沟汽车制造厂)으로 공장명을 변경하고 1976년에 베이징제2자동차공장으로 재차 변경하였습니다.

BJ122 경형트럭 개발

BJ121 픽업트럭BJ121 픽업트럭1980년대 초반에 중국의 자동차산업은 여전히 헤비듀티 트럭이 없고 라이트듀티 트럭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시장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은 1982년에 기존의 BJ212 지프차를 기반으로 BJ121 픽업트럭을 개발하여 시중에 출시하였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판매도 잘 되었지만 도시 물류운송의 수요를 만족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은 치밀한 시장조사를 거쳐 도시 물류차의 개발에 나섰습니다. 선진적이면서 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기업 자체의 가공실력에 적합해야 하며 기존 부품과 호환성을 가져야 한다는 개발원칙을 수립했습니다. 도시물류 운송차인 만큼 차 바닥을 낮고 평탄하게 하여 화물적재에 편하게 만들고, 많은 양을 적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기준을 정했습니다.

조사를 거쳐 일본 미쓰비시(Mitsubishi)의 경형트럭을 참조모델로 선정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차종 BJ122 시리즈 차종을 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탑재엔진 사양과 관련하여 미쓰비시의 4G33 엔진 아니면 토요다 T12 엔진을 놓고 검토를 하다가 미쓰비시 4G33 엔진을 적용하기로 하였으며 베이징내연기관본공장에 의뢰하여 4G33을 본 딴 BJ475 가솔린 엔진을 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BJ130 경형트럭BJ130 경형트럭하지만 1980년대 초반에 베이징자동차공장이 미국의 자동차회사와 합자를 추진하면서 BJ122의 개발과 시제작은 추진이 중단되었고 제품 공정분석과 같은 업무도 계획대로 추진이 안 되었습니다. 미국과 합자회사 설립이 완료되면서 합자회사와 베이징자동차공장이 분사하기로 결론이 나온 뒤 1983년 8월에 공장에서는 BJ122 개발 프로젝트를 지속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1983년 10월에 공장 주력제품으로 BJ122를 선정하였으며 30대를 시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1985년에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 베이징내연기관본공장, 베이징기어공장이 연합하여 필드 테스트를 추진하였으며 73일간의 노력을 거쳐 큰 이상이 없이 테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1986년 초에 BJ122 경형트럭 50,000km 주행테스트 기록과 기타 관련 문건들을 전문가 평가팀에 제출하였으며 심사결과 제품의 성능이 국제수준에 근접하고 국내에서 선진적이며 국내 경형트럭 분야의 공백을 채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베이징자동차의 주도로 베이치포톤(北汽福田, BAIC Foton)이 설립되면서 베이징자동차제조공장의 BJ122 경형트럭과 관련된 전부 기술문서는 기술투자로 베이치포톤에 이관되었습니다. 포톤의 농업용 트럭기술과 결합되어 포톤픽업의 출시에 기술지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유명한 베이치포톤이 성장하는데 있어 BJ122 경형트럭과 관련된 기술들은 회사 초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탄탄한 기술자원이 되었습니다.

베이징벤츠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W205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W205베이징벤츠는 베이징자동차와 독일 다임러(Daimler AG)가 합자하여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승용차를 제조하는 기업입니다. 기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시작은 베이징자동차와 미국의 아메리칸모터스(AMC)가 합자하여 설립한 베이징지프유한회사(Beijing Jeep Corporation)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83년 5월 5일에 합자회사 설립 계약을 체결하고 1984년 1월 15일 정식으로 런칭한 자동차 제조기업입니다. 이 회사는 중국의 자동차 업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설립된 외국계 기업들과의 합작회사이며 아메리칸모터스의 지프 체로키(Jeep Cherokee)와 베이징지프를 생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에 아메리칸모터스가 크라이슬러(Chrysler)에 인수되어 베이징지프의 외자 측 주주는 크라이슬러가 변경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합자기업의 운영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선후로 지프 그랜드 체로키(Jeep Grand Cherokee), 미쓰비시 파제로 스포츠(Mitsubishi Pajero Sport), 미쓰비시 아웃랜더(Mitsubishi Outlander) 등 차종을 제품라인에 추가하였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GLA 200메르세데스-벤츠 GLA 2001998년에 독일 다임러벤츠가 주식교환 방식으로 미국 크라이슬러와 합병을 추진하고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 AG)를 설립하면서 다임러벤츠도 베이징지프에 주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다임러크라이슬러에서 크라이슬러 부분을 서버러스 캐피탈 매니지먼트(Cerberus Capital Management)에 매각하면서 지프브랜드는 베이징지프에서 생산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에 합자회사 상호를 베이징벤츠로 변경하였습니다. 2009년에 크라이슬러는 베이징지프에서 물러났습니다. 현재 베이징벤츠는 메르세데스 벤츠 C클래스 W205, E클래스 V213, GLA 클래스, GLC 클래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베이징현대

베이징현대 완성차 조립현장베이징현대 완성차 조립현장베이징현대(北京现代)는 베이징자동차공업홀딩스와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각자 50%의 지분비율로 설립한 승용차 제조기업입니다. 2002년 10월 18일에 설립되었고 중국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베이징현대는 베이징, 허베이(河北), 충칭(重庆)의 3개 지역에 5개 완성차 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백만 대 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생산하는 차종으로는 쏘나타, 아반떼, 투싼, 싼타페 등 18종이 있으며 그 가운데 그린에너지차가 4종이고 가격은 4.99만 위안에서 28.98만 위안 사이입니다. 생산하는 차종 범위로는 A0급, A급, B급, SUV, 그린에너지 자동차가 있습니다. 설립 후 2018년 말까지 베이징현대는 1,050만대의 완성차를 판매하였고 10,304.6억 위안의 매출을 달성하였습니다.

베이징현대의 설립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92년에 있었던 현대자동차 정주영 회장의 베이징 방문부터 시작됩니다. 그 당시 정주영 회장은 베이징호텔에서 베이징자동차공업본부의 총괄 마서우핑(马守平)과 비공식 회담을 가지면서 기업이익을 양측이 반반으로 하고 50%의 생산물량은 반출하겠다는 조건으로 합자회사 설립에 초보적인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베이징자동차공업본부는 합작에 큰 기대를 가지고 정부 관리기관에 합자회사 설립 신청 보고를 올렸으나 아쉽게도 중국 정부의 인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에 중국이 WTO에 가입하게 되면서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후임 회장이 다시 베이징을 방문하여 그 당시 공산당 베이징시 위원회 서기인 자칭린(贾庆林)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 때 자칭린 서기는 베이징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합작에 동의한다고 태도를 밝혔습니다. 2002년 4월 29일에 베이징에서 합자회사 설립 관련 의향서를 체결한 뒤 베이징시 시장인 리우치(刘淇)가 큰 규모의 방문단을 인솔해서 서울에 방문해서 5월 28일에 합자회사 설립 계약서를 체결하였습니다.
베이징현대 쏘나타(Sonata) 8세대베이징현대 쏘나타(Sonata) 8세대현대자동차 박병재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2002년 6월에 순이구에 입주하였으며 10월 18일에 베이징현대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11월 18일에 라인 구축을 완료하였으며 12월 23일에 쏘나타를 출하시켰습니다. 베이징현대를 구축하는 단계에 베이징자동차공업홀딩스 부회장이고 공산당위원회 부서기인 쉬허이(徐和谊)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협력하였으며 베이징현대의 정상가동에 진입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첫 쏘나타가 출하하는 이벤트에서 쉬허이는 베이징 사람들의 승용차 꿈이 끝내 이루어졌다고 감개무량한 의사를 표시하였습니다.

현대 쏘나타(Sonata)를 출시한 뒤 베이징현대는 2003년 2월말에 스탬핑, 웰딩, 도장, 완성조립 공정개선을 추진하고 연간 5만대 생산능력을 구축하였으며 2003년 7월에 현대 아반떼 중국 버전의 런칭을 기획하였습니다. 그 해 12월에 현대 아반떼 중국 버전 엘란트라(Elantra)를 출시하였습니다. 출시 시작단계에 택시회사에 대량으로 제공하여 가혹한 조건으로 내구성 테스트를 추진하였습니다. 주행시간이 엄청 긴 택시운영에서 엘란트라는 택시기사들로부터 품질 인정을 받았으며 100만km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주행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베이징현대는 이로서 품질면에서 양호한 이미지를 구축하였습니다.

2009년에 베이징현대는 가족형 세단 8세대 쏘나타를 런칭하여 혼다 어코드, 토요다 캠리, 폭스바겐 파사트가 차지하고 있던 B급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였습니다. 현대차의 정체성인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 디자인과 원활한 판매전략으로 중국의 중고급차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한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2013년에 베이징현대는 30대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한 중고급 컴팩트카인 현대 미스트라(Hyundai Mistra)를 런칭하였습니다. 그 해에 중국에서 상치폭스바겐, 이치폭스바겐 다음으로 단일 브랜드 연간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2015년에 베이징현대 허베이창저우공장과 충칭공장의 가동을 개시하였으며 2016년에 9세대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런칭하였고, 2018년 8월에 쏘나타 플러그인 전기자동차를 런칭하였습니다.

자체 브랜드 승용차 개발

합자회사를 운영하면서 승용차 개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베이징자동차는 자체 브랜드 승용차 개발에 다시 나섰습니다. 자체 브랜드 승용차 분야에서 2012년까지 3개에서 4개 사이의 승용차 모델과 2개에서 3개 정도의 터보차지엔진 모델을 개발하여 중고급 승용차의 세분화 시장에 대응하고 이 시장에서 유력한 경쟁자로 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개발계획에 들어가는 차종으로는 A급, 2박스~3박스 B급, 3박스 B+, CUV가 있었습니다.

자체 브랜드 승용차 개발전략을 실현하고자 베이징자동차는 먼저 개발 인프라 구축에 나섰습니다. 자동차 프로젝트의 개발에 필요한 요소들로는 개발조직, 기술, 자금조달 등이 들어갑니다. 우선 자금조달 부분에서 베이징자동차는 베이징시국유자산경영회사와 다른 법인조직들을 동원하여 사업 등록 자본금 규모 35억 위안(한화 5,880억원) 수준의 베이징자동차투자회사를 설립하여 자금융자와 투자 플랫폼을 구축하였습니다. 이로써 베이징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항상 제약 요인으로 나서던 자금조달 문제를 개선하였습니다.

이미 2006년 12월에 연구개발(R&D) 조직인 베이징자동차연구원을 설립하였으며 2007년 8월에는 베이징시국유자산경영회사와 공동으로 10억 위안을 투자하여 자동차부품회사 베이징하이나츠완자동차부품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자동차 부품조달 플랫폼을 구축하였습니다. 베이징하이나츠완은 자체 브랜드 자동차 개발에 부품을 조달하는 외에 베이징현대, 베이징벤츠에 중국산 부품들도 공급하였습니다. 2011년 7월에 베이징하이나츠완은 세계에 유명한 루프시스템(Roof Syetem) 회사 인알파(Inalfa)의 지분 100%를 인수하여 업계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자동차 시험시설과 제조기지 관련하여 베이징자동차는 2009년 2월에 베이징자동차산업 연구개발기지와 국가자동차시험센터를 구축하였고 2008년 8월에 후난성 주저우 생산기지 건설을 개시하고 11월에 52.98억 위안을 투자하여 베이징그린에너지자동차주식유한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세노바(Senova) E시리즈세노바(Senova) E시리즈가장 핵심인 자동차 개발기술 관련하여 베이징자동차는 외국으로부터 기술도입 전략을 택했습니다. 2009년 12월에 베이징자동차에서 공개한 소식에 따르면 베이징자동차는 2억 달러를 투자하여 스웨덴의 사브(Saab)로부터 3개 모델의 완성차 플랫폼, 2개 모델의 엔진기술과 2개 모델의 미션(변속기) 기술을 도입하였습니다. 1,000G 하드메모리 2개에 저장된 기술자료와 3톤 무게에 달하는 기술문서라고 합니다. 베이징자동차는 중국에서 완성차 플랫폼 하나를 개발하려면 5년 정도의 시간에 6억~8억 위안 정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도입한 기술자료에는 완성차, 서브시스템, 부품을 포괄한 전부의 설계자료, 설계요구 도달 여부를 검증하는 검증방법, 검증계획, 검증보고 및 여러 분석방법과 보고들, 협력업체 관리시스템, 완성차 품질관리 시스템, 완성차 제조 시스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브에서 도입한 기술을 이용하여 베이징자동차는 2010년 12월에 2.3T 터보차지 가솔린 엔진 개발에 성공하여 시험에 통과하였고, 2013년 5월에 세노버(Senova) 브랜드로 중급 승용차를 출시하였습니다.
아크폭스(ArcFox) α-T아크폭스(ArcFox) α-T2019년 10월 베이징자동차는 자체 브랜드인 베이징(BEIJING)을 런칭한다는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베이징자동차는 전통 자동차 제조기술과 신규 그린에너지 자동차 기술을 기반으로 그린에너지화와 스마트화를 추진하여 연료형과 그린에너지형의 제품라인을 구축할 예정이고 자율주행 기술과 모빌리티 기술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소식 발표 이벤트에서 베이징자동차는 연료 승용차 최신 기술 버전 베이징-X7과 그린에너지자동차 최신기술 버전 베이징-EU7을 출시한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또한 순수 전기차 탑레벨 모델 아크폭스(ArcFox) α-T를 곧 출시할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아크폭스는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합자회사에서 생산하는 모델로서, 2019년 3월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모터쇼에서 런칭되었고 2019년말에 시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베이징자동차는 1950년대에 설립된 이후 국영기업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 특히, 베이징벤츠와 베이징현대 등 합작사를 세워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시대를 맞이하여, 베이징자동차는 아크폭스 α-T라는 순수 전기차를 만드는 등 다가올 미래를 위해 착실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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